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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금융위기-대한민국IMF 외환위기

by 마엠스토리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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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중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6.25 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약 40년 동안 대한민국 경제가 계속 초고속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다 함께 잘 살아보자'라는 슬로건으로 근로자 해외 파견, 베트남 참전, 중동국가 건설 등 1960년대부터 수출 중심의 공업화를 추진하여 제철소, 건설업, 중화학공업 등을 중심으로 산업투자를 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때 성장률이 6~7%, 많으면 10% 이상 성장한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 부터 1990년 중후반까지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생활 수준도 좋아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젊은 사람들은 X세대라고 불리며, 소비하는 세대가 나타났습니다. 패션, 배낭여행, 어학연수 등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경제적 풍요로움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패션, 자동차, 전자제품 등)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하여 소비문화가 활발해져 경제성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나도 빠른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IMF 외환위기 배경

 

고도성장을 이루는 시점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사업에 집중투자하기보다는 무리하게 문어발식 계열사를 두어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습니다.

사업을 문어발식 확장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는데, 당시 대한민국은 고금리이면서 금리 안정화를 추구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싼 달러를 빌러서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중국의 개방으로 싼 노동력으로 글로벌 수출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또한 당시 제품의 질이 좋았던 일본 제품이 금리가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보다 싸서 수출 경쟁력에서 우위를 찾이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 제품은 중국과 일본에 치여 수출에 타격을 받게 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1997년 초 아시아 전역에 경제 위기감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외국 금융사들은 자신이 투자한 달러를 회수하게 됩니다.

달러 회수로 인해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가 급격하게 고갈되고 있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달러로 무역을 하는 구조로 달러가 거덜나면 대금을 치를 수 없었고 거래의 정지와 국가 신용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 나라가 파탄 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1997년 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고 말레시아, 인도 등 금융위기가 한국까지 이어지게 되어 외국자본이 회수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외환보유액이 300억 달러인데 갚아야 할 돈은 1,530억 달러입니다.

 

이에 국가에도 외환보유액이 적고 기업들도 달러를 유치해 투자해서 1997년 01월 한보철강 부도로 줄줄이 부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삼미그룹, 해태그룹, 진로그룹, 기아그룹 등 크고 작업기업이 만개 부도처리가 됩니다.

대기업이 부도처리가 되면 문어발식 확장된 계열사 또한 부도처리되어 국가 부도위기까지 가게 됩니다.

 

외환보유고가 계속 줄어들고 거들나 버리자 정부는 혼자서는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요청하게 됩니다. IMF지원금 550억 달러를 지원받게 되는데 요구사항이 가혹했습니다.

 

IMF에서 내건 요구조건은 4가지 

 

첫째로, 고금리 정책으로 금리를 연 29.5%까지 올리는 것입니다. 고금리로 불감당한 수많은 기업들의 줄줄이 도산하게 됩니다. 이때 3위 그룹이었던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상황까지 왔었고, 포스코, 한국전력, KT 국영기업이 민영화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구조정입니다. 비효율적인 기업들은 모두 문을 닫게 하고 자본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였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됩니다.

 

셋째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입니다. 당시 회사는 모든 임직원이 정규직이었으나,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입니다. 비정규직을 늘리면 상황에 따라 쉽게 인력을 줄이고 고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비정규직이 유리하였습니다.

 

넷째로, 금융시장 전면개방입니다. IMF가 내건 조건은 완전한 자본 시장 개방이었고 외부 자본 유입이 촉진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회복하여 예정된 만기일보다 3년 빠른 2001년 8월에 구제 금융자금을 모두 상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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