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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경제위기 미국 대공황

by 마엠스토리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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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경제위기인 미국 대공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대공황미국 대공황

 

미국의 호황시기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통해 군수품과 식량도 팔고 해서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서 1920년대 역대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GDP 기준 42%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웠었고 평균 소득이 1,500달러에 실업률이 4% 이하였습니다.

 

빠른 경제성장에는 소득 불균형이 일어 났습니다. 미국의 상위 1%가 가지고 있는 돈이 미국 재산의 60%나 되었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최저인금에 못미치는 소득을 얻고 있어 경제적으로 소득 분배가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을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막대한 부를 이끌어 냈는데 수요과 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물량만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공장에서는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계속 만들어 내고 농작물도 계속 재배를 하다 보니 생산품만 쌓이게 되어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는 수요가 없어졌습니다.

 

미국 자본가들은  전쟁때문에 피폐해진 유럽을 재건하기 위해 건물도 짓고 해서 막대한 부를 얻게 됩니다.

이에 미국 관련 주식들은 계속 오르게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식투자를 대출로 받아 묻지 마 투자를 하게 됩니다.

또한 은행들은 묻고 따지지 않고 대출해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미국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거대한 투기 시장으로 변모해 버려서 실제 가치보다 높은 거래에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경제 버플이 생겼습니다.

 

미국 대공황 시기

 

1924년부터 1929년 동안 다우지수는 급격한 상승을 하게 됩니다. 무려 10배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미국대공황

 

이렇게 무서운 성장세 뒤에는 거품이 끼이게 되는 데 그 당시에는 미국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실물경제는 성장하지 못하고, 주가만 폭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이 될 수록 빈부격차도 커져가기만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미국이 생산되는 물량 대비 수요가 없어지기 시작하고 빈부격차가 커져서 내수 시장에서도 소화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시장에 이상함을 감지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는데 미국 내 투자자들 또한 미국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한달만에 다우지수는 반토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우지수가 1929년 381포인트가 1933년 41포인트 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기업에 대한 투자금액도 줄어 들어 10만 개 기업이 파산하게 됩니다. 이때 묻지 마 대출을 해주던 은행들도 약 6,000개의 은행이 한꺼번에 파산되면서 259억 달러(한화 약 30조 3,400억) 정도가 공중분해돼버립니다.

 

이러한 파산한 은행으로부터 사람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됩니다.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서 실업자 수는 1,300만 명 실업률 25%로 그 당시 4명 중 1명이 실업자였습니다.

 

미국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정부가 움직여서 대공항을 탈출하고자 뉴딜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뉴딜정책은 은행개혁법, 긴급 안정책, 일자리 안정책, 농업 정책, 산업개혁, 연방 차원의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금본위제와 금주법을 폐지했다. 

돈을 풀어 대규모 건설 사업으로 실업률 등의 낮춰 1937년 공항이전의 회복세를 이끌어 냅니다.

하지만 미국의 재정적자는 갈수록 늘어나게 되어 다시 불황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처럼 미국은 유럽연합국에 무기와 식량을 팔기 시작하여 대공항을 탈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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