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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투기의 역사-프랑스 미시시피 거품

by 마엠스토리 202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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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의 역사 중 프랑시 왕국의 미시시피 회사 거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시시피회사 거품 역사

 

18세기 초 프랑스 루이 14세의 호화로운 생활로 국가는 빚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전쟁을 일으키고 해서 돈을 쏟아부어 재정은 악화되었습니다.

1715년 당시 프랑스 채무는 30억 리브르로 연간 재정수입은 1억 4500만 리브르에서 지출 1억 4200만 리브를 뺀 300만 리브르로 이자조차 내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가 파산 위기에 처한 루이 15세는 온 갖 정책들이 실패하자 존 로이 등장으로 당시 금과 은을 통화로 사용하였는데, 금속화폐 대신 국가가 보장하는 지폐를 사용하자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였고, 지폐는 찍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적절한 공급량만 조절해 주면 괜찮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어 로가 제안한 은행 방크 제네랄 프리베 설립을 허용했습니다.

 

방크 제너랄 프리 은행이 발행한 지폐로 정부는 세금으로 납부하도록하고, 지폐를 발행하고 통용하여 국가부채를 소화하게 되었습니다. 존로는 프랑스의 경제를 살렸다는 공로로 재무총감의 자리까지 올라 신뢰를 쌓았습니다.

 

프랑스 필리프2세는 존 오를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제시한 미시시피강의 개발과 운형에 대한 계획을 승인하게 됩니다.

존로는 미시시피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하여 다른 회사들을 합병하기 시작해서 담배 독점권, 무역 독점권 등을 승인을 받고 주가는 1718년 300 리브르에서 1719년 2만 리브르까지 칫솟았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빚을 내가면서 주식 매수에 나섰습니다.

 

미시시피 거품은 미시시피 회사 주식 공모로 은행권을 대량으로 발행해 미시시피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많은 사람들은 주식을 사모았습니다.

 

미시시피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백만장자라는 단어도 탄생되었고, 곱사등이가 자기 등을 서명대로 내주고 큰돈을 벌었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고 있어 너도나도 묻지 마 투자를 한 실정이었습니다.

 

프랑스 필리프2세가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량의 증가 정책을 펼치면서 물가 특히 빵과 우유가 6배, 의복류는 3배나 올라 경기가 너무 과열되었고 미시시피회사가 금광사업에 대한 의구심의 확산 물가 폭등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화폐의 가치를 의심하고 금화나 은화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 왕자가 주식을 팔아 금과 은으로 바꾸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신뢰를 잃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교환을 요구하고 주식도 팔기 시작했습니다.

 

1720년 6월 미시시피회사의 주가가 500 리브르까지 떨어졌고 많은 사람들은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프랑스 정부는 모든 책임을 존 로로 돌렸고 로는 베네치아로 도망가 1729년 그곳에서 객사했다고 합니다.

 

미시시피회사 투기의 교훈

투자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미시시피회사 거품은 투자자들이 너무 빠르게 그들의 돈을 투자하고 기업에 신뢰를 너무 쉽게 부여했던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투자 결정을 할 때 신중함과 조심성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어떤 투자든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며, 너무 급한 마음으로 결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시시피회사 거품사태는 역사적인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실수와 오류를 피하기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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